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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1. 21世 〉26. <부정공>백강공휘경한행장(白岡公諱擎韓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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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부정공>학생공휘기운묘표(學生公諱淇運墓表)
學生公諱淇運墓表 人之處於亂世能導率其子弟使生而守先王正道自禦其身於林下雖死而泰舊樣顏貌歸見先人於地下則可不爲賢父兄乎嗚呼今日是何日所謂名門遺裔者滔滔皆朗陵之彧大邱之群也世有晦翁安得不發聚星之歎耶順天仙湖里吾宗黨世居也有名樂模者持論峻整不撓流俗華夷人獸之界分痛然剖劈豈無所受而然歟嘗遣子東善從余遊者有年日以書來曰此先人家狀一通幸覽而下數語以俵隨道是不肖之願也余乃讀其狀其敎勗樂模也一則曰讀書二則曰讀書自幼上學也雖有甚忙迫事朝朝夕夕每入黌堂察其咿唔之勤惰然後退而幹事寒暑也如是風雨也如是一日冒雨檢稼歸來憊甚旋就寝樂模意謂今夕必不來察遂昏睡廢讀小頃有警咳聲怱然驚起則乃以簑笠到庭下厲聲責之曰古之貧士多三餘用工而汝之怠惰若是則烏在其先人臨終囑我敎汝之意乎在圉忘父在汝忘祖其何望諸其致誠嚴督盖此類也一夜月明喟然曰流光疾於奔駟世道去益變遷汝須勿負寸陰亦不爲時俗所移則吾可以瞑目於地下隣家有文雅之士來訪或邀而欵接或助而供饋噫吾今而後知世無無根之枝無源之委也傳曰内無賢父兄而能成者少矣觀於樂模之爲人可想其先公之典型矣遂不辭而略可檃括以補平日蹩躄空堂一自悦話之未奉焉公諱淇運字道焉趙氏系出高麗門下侍中諱璋三傳而諱元吉玉川府院君諡忠獻公子諱瑜官副正麗亡入杜門洞 長房孫諱智崗四昆季同處相好亭克篤友愛之義是生諱琛内大司外慶州府尹後有吼爾重官統制使被辛壬誣禍系子諱泰鼎 贈參議曰秉常曰在鎬曰潤錫曾祖祖禰諱也妣延日鄭氏忠煥女以 哲宗壬子十一月十五日生卒于 高宗乙未四月二十五日墓在黃田面竹青里後麓環松嶝戌坐原配慶州金氏是鼎女繼配咸豊李氏 女男即樂模女適豊川盧鳳壽清道金器萬皆金出樂模娶延日鄭氏浹女生三男二女男東善東昱東曜女適全州李龍浩青松沈麒植諸孫皆以文學有望前頭此乃公平日勸學式穀之報也歟 乙丑三月上弦 族弟 章燮 謹撰 학생공휘기운묘표(學生公諱淇運墓表) 사람이 난세를 당하여 능히 그 자제를 거느리고 살며 선왕의 정도를 지켜 스스로 그 몸을 수풀 밑에 숨겨 호위하면, 비록 죽어 옛 안면을 받들고 先人을 지하에 돌아가 뵈어도 가히 어진 부형이라 하지 않겠는가. 아! 오늘날은 이 무슨 날인가. 이른바 이름있는 집안 후손들이 시대의 조류에 따라 다 朗陵의 문채로 큰 무덤[大邱]의 무리니 당세 주부자[朱子]가 있으면 어찌 聚星의 탄식을 발하지 아니하겠는가. 순천 仙湖里에 우리 족인 樂模가 있는데 가진 의논이 높히 정돈되어 흐르는 풍속에 흔들리지 않고 중원과 오랑캐·사람과 짐승의 구별을 속 시원하게 가리니 어찌 천성없이 그리 되겠는가. 일찍 아들 東善을 보내 나를 따라 수학한 지가 여러해인데, 하루는 글을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이는 우리 선인 가장이니 잘 보고 몇 말을 보태어 묘도에 표하게 하는 것이 이 불초의 소원이라 하므로 내가 이에 그 장문을 읽어 보니 그 樂模를 힘써 가르침에 하나도 독서요, 둘도 또한 도서라, 처음 입학한 뒤로부터 비록 심히 바쁜 일이 있어도 조석으로 항상 서당에 들러서 그 글을 부지런히 읽는가 안 읽는가를 살핀 연후에 물러가 일을 보고, 춥고 더워도 이와 같이 하고, 비바람이 불어도 이와같이 하였다. 하루는 비를 맞고 곡식 종자 뿌린 것을 감독하고 돌아와서 곤히 잠이 들었으므로 낙모가 오늘밤에는 반드시 아니 오실 것이라 생각하고 마침내 졸면서 읽기를 폐하였더니 이윽고 기침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일어난즉, 대삿갓을 쓰고 뜰 아래 이르러 큰소리로 꾸짖어 말하기를, 『옛적에 가난한 선비는 겨울밤 음습하고 비오는날에 공부를 많이 하였는데 너의 게으름이 이와 같은즉 어찌 그 先人 임종시에 나에게 너의 교육을 유촉하신 보람이 있느냐. 나에게는 어버이를 잊은 것이 되고, 너에게는 할아버지를 잊은 것이 되니 그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 정성을 다하고 엄히 감독함이 대개 이와 같았다. 어느 달밝은 밤에 한숨을 쉬며 말하기를, 『흐르는 별이 달리는 말같이 빠르고 세도가 갈수록 더욱 변천하니 너는 모름지기 시간을 허송말고 또 시속에 마음을 옮기지 말아라. 그리하면 내가 지하에서 눈을 감겠다.』 하였다. 또 이웃집에 찾아온 문사가 있으면 혹 맞아다가 환대하고 혹 보조 공궤하였다. 아, 내가 지금부터는 세상에 뿌리 없는 가지와 근원이 없는 물이 없다는 것을 알겠다. 傳에 가로되, 『안에 어진 부형이 없이 능히 이룬자 적다.』 하였으니 낙모의 사람됨을 보니 그 先共의 전형을 상상하겠도다. 마침내 사절 아니하고 대략 굽은곳을 펴고 모난 곳을 바로하여 평일에 빈 당을 절름발이 걸음으로 맴돌며 悦話를 받들지 못함을 보충할 따름이다. 공의 휘는 淇運이요 자는 도언이며 옥천조씨인데 고려 문하시중 휘 璋을 상조로, 三대를 내려와 휘 元吉은 옥천 부원군에 시호는 忠獻이요, 아들 瑜는 벼슬이 부정으로 고려가 망함에 두문동으로 들어갔으며 장방손 휘 智崗은 四형제가 함께 상호정에 거처하며 능히 우애의 의리를 독실히 하였고, 아들 琛은 내직 대사성에, 외직 경주부윤이요, 휘 爾重은 벼슬이 통제사로 辛壬誣禍를 입었으며, 계자 泰鼎은 증참의이다. 秉常·在鎬·潤錫은 증조·조·고의 휘요, 비는 延日鄭氏 忠煥의 따님이었다. 哲宗 壬子(一八五二)년 十一월 十五일에 출생하여 고종 乙未(一八九五)년 四월 二十五일에 별세하니 묘소는 黃田面竹青里後麓環松嶝戌坐原이고, 부인은 配慶州金氏 時鼎의 딸이고, 繼配는 咸豊李氏인데 아들은 곧 낙모요, 딸은 豊川 盧鳳壽·清道 金器萬의 부인으로 다 김씨 소생이었다. 낙모가 延日鄭氏 浹의 여식을 취하여 三남二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東善·東昱·東曜요, 딸은 全州 李龍浩·青松 沈麒植의 부인이었다. 모든 손자가 다 문학으로서 전도가 유망하니 이것이 공이 평일에 학문을 권하고 착하게 기른 보시가 아니겠는가. 族弟 章燮 삼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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